곰아저씨가 만들어가는 ‘함께’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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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장애인들의 고용’을 위해 만든 회사, 베어베터컴퍼니의 김정호 대표는 마음이 닿는 곳에 차곡차곡 나눔을 쌓아왔다. 어려운 학창 시절을 겪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학생들이 눈에 밟혀 시작한 모교 장학사업, 부모님의 잃어버린 고향 ‘북한’에서의 빵 공장,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베어베터 사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나눔은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눈길이 가는 그 곳에 있었다.

<베어베터컴퍼니 김정호 대표>

5년 전 베어베터 사업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업체들은 장애인 회사와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일하는 사람들 다수가 장애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업체를 설득하고 영업하고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수많은 설득 끝에 하나의 중소기업에서 ‘일단 시작해보자’라며 뛰어들었고 편견을 깨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현재는 업계 4대 기업과의 거래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 회사라는 편견을 넘어 고객과의 신뢰를 쌓아가는 회사로
“자폐의 경우에 5년 전에 취업률이 0.7%였거든요. 취업률이 0.7%라는건 취업이 거의 안된다는 얘기에요. 이 마저도 부모 회사에 등록하는 경우도 있고, 아는 회사에 그냥 이름만 걸어놓는 경우도 있어서 결국 거의 안 된다는 건데요. 취업이 아예 안 되는 사람이 20~25만명이 된다는 걸 알았을 때 도전의식이 생기더라구요. ‘바꿔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도전이었고, 그걸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취업자 가족들이 보내오는 편지의 영향이 정말 컸어요. 한 분 한 분을 위한 정규직 자리가 생기고, 그 자리에 고용된 친구들 가족이 보내오는 편지를 읽을 때 진짜 감동이 되고, 시작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것을 원동력으로 여기까지 이어져 오게 된 거죠.”
함께 하는 발달 장애인들과 그 가족이 활력을 찾는 모습이 원동력이 된다는 김정호 대표.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10년 내에 지금의 10배인 2000명의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회사가 되는 것. 그렇기에 베어베터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계속 파트너십을 이어가 줄 것을 청하는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삶에서 아쉬웠던 부분, 그것을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눔
김정호 대표는 15년 전 모교에서 장학기금 사업을 시작했다. 택시를 운전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랐고, 직장인으로 월 80만원을 받으며 소소한 기부와 봉사활동을 했다.
“35살에 네이버 창업으로 졸부가 되고 제일 먼저 한 것이 모교에서의 장학사업이었어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았으니, 직접 벌어 학교를 다녀야 했죠. 방학 때는 12시간씩, 학기 중에는 4시간씩 일을 했는데 가장 아쉬웠던 것이 어학이었어요. 어학연수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알바를 하는 통에 어학 공부를 할 시간도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 중에서 학점이 3.2 이상인 사람들을 선발해 어학연수를 보내는 장학기금을 만들었어요. 그게 시작이에요. 근데 제 이름은 없어요. 서른 몇 살 밖에 안 된 젊은 사람이 큰 돈을 낸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을 것 같아서 어머니 이름으로 시작 했어요.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진짜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함께 네이버를 창업한 권혁일 해피빈 이사장과의 소소한 대화에서 기아대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부모님이 모두 북한 실향민이신 김정호 대표는 매스컴에서 북한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쓰였다.
“한번은 북한에 이런 저런 기부를 하고 싶은데 가장 잘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어요. 권혁일 이사장이 지체없이 “기아대책이랑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김정호 대표는 ‘북한 빵공장 설립’으로 기아대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10년간 많은 기부를 통해 필란트로피 클럽의 회원이 되었다.

스스로의 변화, 흘러가는 좋은 영향
처음에는 주변에서 “왜 이러냐, 돈 밖에 모르던 사업가가 무슨 일이냐”며 의아해했다. 그렇게 어언 15년이 지나가니, “의외로 오래한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하는 반응으로 바뀌어갔다.
“심지어 부모님도 ‘너 왜 이러니?’라고 하시다가 10년이 넘으니 ‘의외로 오래하는구나’라고 하시다가 ‘네가 원래 진짜 이런 애인가 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느 날 어머니가 ‘아들이 내 고향 북한에 빵 공장 하는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들이 진짜 저를 바꿔가는 것 같아요.”
아버지로부터 나눔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일까. 김정호 대표의 두 자녀는 나눔의 자리에 망설임없이 동참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원 봉사도 다니고, 학교에서 봉사 관련 일이 있으면 신청해서 다녀오더라고요. 지난 번에는 학교에서 다같이 필리핀 선교 여행을 갔다 왔어요. 제가 ‘갔다 와라, 봉사해라’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착하게 사는 것을 보면 굉장히 신기하기도 하고 보람 있죠.”
김정호 대표는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거듭 말하며, 주변에 물 흐르듯 좋은 영향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돌이켜 봤을 때 변화되고 있는 것이 이제서야 느껴진다고 했다. 착한 척을 하다 보니 스스로 조금씩 착한 사람이 되더라는 것이다.
“’어제도 가서 애들한테 장학금 줬는데 내가 오늘 이러면 안되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착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시간을 기부하는 사람들의 행보를 응원하며
그는 어떻게 나눔과 기부를 실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간을 내어 직접 참여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당부한다.
“제가 보기에는 돈으로 하는 기부보다 시간으로 하는 기부가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외부적으로는 거액을 기부하는게 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자기가 시간을 내서 직접 참여하는게 정말 중요해요. 누구에게나 무엇이 됐건 처음이 가장 어려워요. 그래서 과감하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시작하기 쉽지 않지만, 잘 찾아보면 자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들,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요. 자동이체하거나 ARS로 하는 것 말고 직접 참여의 턱을 넘어가는 것, 그게 나눔의 처음이고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