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 찾은 새 희망, 언젠가 빛을 볼 나비들을 후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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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의 나이지만, 나눔의 삶으로 새로운 인생의 막을 올린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쉽지 않은 공무원 생활이었지만 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삶에서 늘 아쉬웠던 부분들이 있었지만, 복지관을 만난 이후 그 부분들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과 조손가정에 나누며 살 수 있게 된 것, 살아갈 희망을 나누는 것에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박병용 후원자를 만나보자.

기아대책 필란트로피클럽 박병용 후원자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인격을, 인격은 희망을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간 아버지, 가장의 역할까지 하며 농사일이 바쁜 어머니 는 어린 박병용 후원자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할머니 손에 길러지며 7살 때부터 소를 몰고 농사일을 도왔다. 10년 후 아버지가 돌아오고 나서야 12살의 나이로 뒤늦게 국민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일본 가서 돈 한 푼 못 벌어 오신데다 소농이어서 돈이 없었던 재정 상황때문에 중학교를 못 갔죠. 농사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이것저것 찾다가 2년제 공과학교 토목과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마저도 전쟁 말기가 되니, 일제가 교육 기간을 1년 단축해서 1년만 공부하게 하고 사회로 내보냈어요. 그게 1945년 4월입니다. 해방되기 불과 몇 달 전 일이지요.”
그렇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매번 학교 잘 나온 동료들에게 좋은 직위를 다 빼앗기고 뒤처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이대로는 경쟁사회에서 못 살 것 같다. 결국 공부를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장에 다니며 만학을 했죠. 직장을 마치자마자 강의 들으러 간다는 게 쉬운 건 아니더라고요. 그것을 참고 견뎌 마침내 1959년 33살의 나이로 공학사 졸업장을 받았어요.”
그 후로 정부가 바뀌고 승진 인사가 많이 적재되어 있던 그는 3급 진급 시험에서 8명의 공업학교 출신들과 경쟁해 최종 2인 중 한 명이 되었다. 33년의 꿋꿋한 공무원 생활 가운데 이사관까지 승진하고 대통령 훈장까지 받게 된 것.
“사실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한 사람인데, 사회에서 정정당당히 경쟁을 한 결과가 이 정도면 조금은 더뎠지만 결국 성공한 것이 아닐까 해요. 고통이 참 많았지만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인격을, 인격은 희망을 낳는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마지막까지 인내를 벗삼아 끝까지 땀 흘린 것이 승리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나눔 새로운 행복 시작

“2006년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로 변신을 했어요. 양재노인복지관에 오고 1년 만이었죠.” 처음 산타할아버지가 되는 경험을 하고, 곧장 ‘지니선생’이 되었다. 지니선생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끝 글자를 합친 말인데, 선생이 되어 서초구 관내에 있는 어린이집을 돌아다니며 인성교육을 하는 선생님을 뜻한다. 설날, 추석 같은 전통 명절에는 예의 범절과 전통 놀이를 알려주고, 4대 국경일에는 국경일의 의미를 가르치며 어린이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교통 안전, 불조심, 쓰레기 분리와 같은 우리 일상에서 필요한 부분들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이 활동을 통해 122개 정도의 어린이집을 찾아 연 4800명 정도의 어린이들에게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교육했다.

복지관에서의 시간들이 기아대책과의 만남으로

2012년 복지관에서 떠난 봉사단 워크샵에서 기아대책과 만나게 되었다. 만남은 기아대책과의 또 다른 나눔으로 확장되는 계기였다.
“복지관에서 다른 기관과 연결해서 워크샵 같은걸 하잖아요. 그 때 기아대책에서 나오셔서 특강을 했는데 그 강사분이 기아대책 동부지역의 본부장이시더라구요. 그 당시 재능기부는 하고 있었지만, ‘이거 가지고는 안되겠다’라는 생각과 ‘뭔가 모자라는게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강의를 듣고 난 다음 기아대책에 후원을 하게 됐죠. 거기서 그렇게 인연이 된 겁니다. 당시 2학년이었던 아이, 예술가가 되겠다고 한 그 아이에게 지금도 계속 후원을 이어 가고 있어요.”

십시일반으로 시작된 나비 프로젝트, 그리고 나비효과

나비모양으로 생긴 서초구 지도를 보고 ‘나비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그 이름 속에는 나비 프로젝트에서 하는 모든 일이 ‘작은 날개짓’이지만 이로 인해 긍정적인 일들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커다란 일들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들어있다. 나비프로젝트는 2013년에 시작된, ‘서초구 어르신 나눔 후원회’가 모태이며, 회원들이 쓰고 있는 귀한 용돈과 많지 않은 생계비를 아껴 한달에 만원 이상을 모아 좋은 일에 쓰자는 취지에서 탄생한 후원회이다.
“3년 동안 활동이 지속되니 자금의 여유가 조금 생겼어요. 이걸 더 뜻있는 데에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서초구랑 협의해서 시작한 게 나비 프로젝트거든요. 나비프로젝트는 서초구 관내에 있는 조손 가정의 학생들에게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이에요.”
생각보다 많은 신청자에 당초 예상했던 예산을 초과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덜어낼 수는 없었다.  앞으로 후원 대상 아이들이 더 늘어나는 추세에 한정된 후원회 모금액만으로는 마음껏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돕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긴 고민 끝에 쓰고 있는 생계비 자신의 생활보다는 나눔의 공동체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결국 1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확보된 기금으로 올해 23명에게 1,2학기 마다 940만원을 지원했고, 극빈학생들에게 월 5만원씩 결연후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운영 5개년 계획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는 그동안 쌓여온 문의, 어려움들을 보완하고, 젊은 사람들이 이어서 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또, 후원금이 ‘아이들의 꿈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본래의 뜻에 알맞게 잘 쓰고 있는지 계속 지켜보고 싶기도 하다.
박병용 후원자는 나비프로젝트를 힘겨웠던 삶 가운데 쌓아온 마음 속 깊은 응어리를 푸는 기회로 삼고 있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이런 사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 친구들에게 살아갈 희망이 될 것이라 믿으며, 이 믿음을 담아 나비프로젝트와 함께 하는 조손 가정 학생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 여러분,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미래를 위한 현명한 실천은 바로 교육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희망을 가꾸기 위해서 나비 프로젝트는 응원의 끈을 놓치 않을 것입니다.”

뒤늦게 알게 된 나눔의 기쁨, 그 멋진 삶을 제안하며

“우리 세대의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이 이렇게 늦게라도 깨우치고 사회에 참여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불우한 이웃들이 너무 많은데 그분들이 미소 짓는 것을 보면 여러분도 마음이 편해질 거에요. 기부라는 게 그런 의미가 있더라구요.”
미국 하버드 대학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타적 행동을 하면 행복감을 느끼는 엔돌핀이 정상치의 3배 이상이라 해요. 박병용 후원자는 이 연구 결과가 나눔 자체가 나눔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하며, 모두가 함께 나누는 기쁨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나눔이 행복과 건강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주는 거죠. 모두가 ‘함께 나누는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용단을 내려주세요. 이것은 바른 선택이기 때문에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스한 기부, 나눔의 온정을 베푸는 멋진 인생으로 거듭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