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남기는 나눔의 삶, 유산기부

0
713

‘기부’, ‘나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그 방법 또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큰 폭의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현 시대, 많은 이들이 ‘나눔’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은 가지고 있으나, 실제 그것이 행 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쉽지 않다. ‘여유가 생기면 그 때 해야지’라는 생각 한 켠에는 알 수 없는 ‘자책감’과 밀린 숙제를 하 지 않은 못하고 있는 듯한 ‘부담감’이 웅크리고 있다. 마음의 불편함을 ‘유산기부’로 해결, 한결 가뿐한 마음으로 삶을 살 아가고 있는 남영미 ING생명 FC를 만났다.

기아대책 필란트로피클럽 남영미 후원자 (ING생명 FC)

20대 때 증권회사를 다니다가 잠깐 쉴 기회가 생긴 그 때부터 기부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기아대책과의 만남은 보험인들의 모임,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에서 7년 전 부터 시작됐어요. 기아대책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한 아이를 위한 기부를 시작했어요. 기부금이 잘 전달 되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따로 확인하지 않았는데, 기부하던 아이가 취직했다며 다른 아이를 후원해주시면 어떻겠냐는 양해의 레터를 받았어요. 그 레터를 받고, ‘기아대책이 후원자 피드백에 있어 정말 신경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신뢰감이 들었어요.”

“제가 가끔 일회성으로 얼마를 기부하겠다 얘기를 하면 기아대책에서는 어디에 쓰고 싶은지 먼저 묻고, 얼마가 쓰였는지 정확하게 보고를 주시더라고요. 그 모습 을 보면서 기아대책을 더 신뢰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카이스트 AIM과정에서 만난 존경하던 김영걸 교수님 의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되었죠. 기아대책 헤리티지클 럽 회원으로 유산기부를 하신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기사를 보고 ‘그동안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이거였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헤리티지클럽에 가입 하게 되었어요. 교수님이 4호, 제가 바로 이어 5호가 된 거죠.”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통해 자신이 삶이 크게 변화되었으며, 그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한다. 남영미 FC 또한 유산기부를 결심해서 변화된 부분이 있었을터. 가장 크게 나타난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밀린 숙제를 한 것 같은 후련함’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방법이나 시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출산을 좀 늦게 해서, ‘아이도 키워야 하는데, 내가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저희 부부에게 항상 있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유산기부’를 결심하면서, 당장 큰 금액을 기부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약속한 금액이 기부되기 때문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인생을 살고 있어요.”

“15년전에 아름다운재단에서 하는 ‘기부보험’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후에 기부자가 원하는 교회나 재단 쪽으로 기부가 되는 형태의 보험이에요. ‘아름다운 재단’과 ‘카이스트’에 1천만원씩 기부되는 보험을 가입했고 벌써 납부도 끝나갑니다. 보험이란 기본적으로 유지만 한다면 납부한 돈보다 항상 더 많은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데, 저의 경우 매월 약 48만원씩 10년간 납부를 해도 약 5,800만원정도지만, 기아대책에는 1억 원이 기부됩니다.  그동안 제가 준비해왔던 자산관리는 우리 가족을 위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허물고 싶지는 않았어요. 죽음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유산을 기부할 시점이 된다면 가족의 자산을 건드릴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사후에 가족을 거치지 않 고 바로 수익자인 기아대책에 1억원이 지급되는 기부보험을 새로 가입하고 그 증권을 기아대책에 전달했습니 다.”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유산기부’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 “유산기부를 신청하면서, 알아보니 실제로 가입자 사후 가족 분쟁이 참 많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헤리티지클럽 가입 전, 배우자에게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는데, 너무나 흔쾌히 동의를 해주더라고요”

그녀의 남편은 실제로 ‘유산기부’를 알게 되고 난 후, 그녀를 후원해주기도 하고 응원해주기도 하면서 가장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아대책에서는 ‘유산기부’ 가입을 진행할 때, 먼저 가족들의 동의를 구한다. 이 때문에 분쟁의 소지가 없어져 가입자들은 마음 편히 안심하고 ‘헤리티지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저를 통해서 ‘기부가 쉬운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거죠.”

“중학교 때 아빠가 많이 아프셨어요.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때 제가 선배님들이 주신 장학금을 받았어요. 지금은 굉장히 작은 돈인데, 그 때 저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었거든요.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니, 지금의 후배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마음에 부담감을 갖거나 배움을 포기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더라고요.” 그녀의 어려운 학창시절로 인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었다. 특히 학비가 없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그녀는 요즘도 급식비가 없어 밥을 먹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딱히 저를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저를 통해서 ‘기부가 어렵지 않은 것 이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김영걸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님의 기사를 읽고, 유산기부에 대해 알게 되고, 결심하게 된 것 같이요. ‘이웃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계시다 면, 이미 기부는 시작된 거예요. 힘이 세면, 힘으로 남을 도울 수 있고, 재능이 있다면 재능으로, 금전이 있다면 물질로도 기부를 할 수 있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나눌 수 있는 거죠.” 동네에서 처음 시작했던 ‘독거노인 무료 도배’ 봉사활동을 떠올렸다. 봉사활동을 주최하던 단체는 ‘홍보를 열심히 해서 재능기부를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 단체의 모티브가 참 많이 와 닿았고, 공감이 됐어 요. 그래서 저도 저를 통해 많은 분들이 ‘이런 기부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하시고, 나아가 동참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인생의 신조에서도 그녀의 삶이 묻어난다. 많은 어려움과 기쁨들을 거쳐 온 그녀가 지금 많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너무 혼자서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대방이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도와주지 못하는 경우도 되게 많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멘토를 만들거나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인생을 살면서 기쁜 일도, 힘든 일도 많았 는데, 시간이 지나가면 다 없어지는 일들이더라고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기억하시면서, 좌절했던 분들은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시고, 좋은 일들이 있 는 분들도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나누시길 바라요. 한 번 뿐인 인생, 이런 일 저런 일 나누어 가며 다함께 살아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