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우프코리아 김혜란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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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김혜란  우프코리아 상임이사(WWOOF KOREA executive director)

    우퍼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인 ‘곳’에서 김혜란 상임이사를 만났다. 소박하지만 알차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한옥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20년 전 처음 경험 했던 우프의 기억과 함께 1999년부터 우프코리아를 이끌어 온 시간과 정신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녀는 우프를 단순히 ‘농법’이나 ‘여행, ‘노동력의 교환’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교류이자 서로 간의 ‘삶’의 공유라고 정의하며 앞으로 친환경적인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우프의 정신도 함께 집중 조명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농업과 친환경적인 삶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우프코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어느 질문에나 거침이 없이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대답을 해준 그녀는 한국인들의 농업에 대한 관심에 대해서는 잠시 머뭇거렸고 우프의 미래에 대해서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으며 한국 호스트와 우퍼에 대해 말할 때는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Q. 우프코리아는 우프의 한국 지부를 대표하는 곳입니다. 우프코리아에 계신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1999년부터 일을 했으니까 18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이제 곧 20년을 맞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Q. 한국 우프가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프코리아는 사실 1997년에 호주에서 우프를 체험한 이창렬 씨가 설립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프코리아는 한국인 우퍼를 받지 않았고 호스트는 명분상 두 세 곳에 불과했어요. 오직 한국 학생들을 해외로 보내는 일만 하고 있었죠. 우프코리아가 현재의 틀을 갖추게 된 것은 2011년 사단법인으로 재탄생 되고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인 우퍼를 받았고 유기 농가를 하는 호스트님들이 증가하기 시작했죠.

    Q. 우프코리아의 탄생과 역사의 산 증인이시네요. 우프코리아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신 건가요?
    저는 원래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일을 하고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죠. 워홀로 호주에 1년 동안 있으며 마지막 3개월을 우프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만 두었던 회사에 다시 근무하게 되었는데 예전처럼 일이 즐겁지 않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설계일이 제 천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큰 혼란이 왔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온통 호주를 다시 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의 90%가 우프의 기억이었습니다. 우프를 경험하고 제 몸과 마음이 완전 달라지게 된 거죠. 그래서 두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그 길로 곧장 우프코리아 사무실로 일자리가 있는지 물으러 찾아갔습니다.

    Q. 아직까지도 국내의 대부분 사람들은 ‘우프’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몇 십년 전에는 상황이 더 심했을 텐데 그 당시 우프코리아가 잘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당시에는 우프코리아가 지금처럼 농업을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라 해외에서 언어 및 경험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어학연수 기관을 소개하고 그후에 우프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유학 업무를 하던 곳과 비슷했습니다. 한국의 친환경 농가 라는 개념도 거의 없었을 때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해외 우프업무에 대한 업무만 진행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저는 지금과 같은 명분과 가치를 두고 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들어간 지 6개월만에 이 대표가 우프코리아를 그만두고 팔아야겠다고 말하더군요. 그 찰나의 순간에 저는 ‘우프코리아를 내가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렵게 돈을 모아 제가 인수를 하고 지금까지 운영되어 온 것이죠.

    Q. 어떤 확신을 가지고 그런 결정을 하셨을 지 궁금합니다. 그 이후 우프코리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확신은 없었고 우프코리아에서 일을 하면서 제가 마치 우프를 하고 있다는 대리만족이 컸는데 그런 감정에서 받은 행복감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단 무턱대고 인수는 했는데 사실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해외우프를 지원하는 일이 업무의 전부였는데 그 사이 명분상 유지해온 호스트님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한국 우프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퍼들과 서로 교류하고 친환경 농업을 하시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게되면서 한국 우프를 해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나라의 경우는 우프가 정말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정황상 한국 우프는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움직이기 시작했죠. 2009년에 농림부 게시판에 우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직접 글을 올리고 이를 계기로 농림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기도 했고 사단법인으로 전환하면 더욱 좋겠다는 권유를 받아 2011년에 사단법인으로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우프를 하게 되었죠.

    Q. 현재 우프코리아의 규모는 어느 정도 인가요.
    우프코리아가 2011년 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인 우퍼를 받기 시작했고 호스트 농가도 많이 늘었습니다. 2011년부터 매해 평균 30~40% 수준의 성장을 보였습니다. 2015년은 메르스, 2016년은 AI, 한국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조금 주춤하지만 작년 한해 600명 정도의 우퍼가 한국 우프를 경험했습니다. 현재 우프코리아에 등록된 유기농가는 총 75곳입니다. 우프코리아는 이제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해외 우프들과 공통적으로 우프의 정신과 가치를 추구하며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더 많은 호스트 더 많은 한국 우퍼들이 참여해서 우프의 가치과 한국 농업에 생기를 불어넣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사이드 _수정(다시)

     Q. 개인적으로 경험한 우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호주에서 3곳을 방문했는데 한 곳은 그야말로 악동 농가였어요. 먹을 것도 제대로 준비해주지 않고 일은 엄청 시켰거든요. 그런데 나머지 두 곳에서의 기억은 정말 좋았어요. 인상 깊었던 기억이라면, 한 곳에서는 비가 무척이나 많이 오던 날이었는데 호스트가 빗물을 모아서 그 물로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또 그렇게 사용한 물을 버리지 않고 변기물로 활용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호스트가 빗물이나 쉽게 버려질 수 있는 물을 모을 수 있도록 집을 직접 설계했더라고요. 물을 모으는 데 최적화된 구조로 설계된 집이었습니다. 마지막 호스트는 작은 텃밭에서 여러 작물을 심는 호스트였습니다. 별 다른 수입원 없이 텃밭에서 기른 채소와 식량으로 자급자족하는 가족이었는데 아이 세 명과 함께 얼마나 행복하게 생활하던지요. 부족한 부분은 이웃들과 물물교환을 하며 채워 나갔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감동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어요.

    Q. 우프를 경험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삶의 태도에 상당한 변화와 깨달음을 얻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우프를 하면서 ‘아,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우퍼 분들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구나’라고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우프를 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프의 핵심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그들 사이의 시간과 가치와 생각의 교환이에요. 그래서 우프를 한다는 경험보다는 우프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호스트를 만나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우프라는 것은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을 해주는 것 뿐이지요. 우프를 통해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것을 배우는 지는 어떤 호스트를 만나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Q. 그야말로 우프는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플랫폼인 거네요.
    네, 하지만 ‘친환경적인, 기술 시대의 대체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고, 추구하고 싶은 사람’ 이라는 전제가 붙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우프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정신과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우프는 이러한 정신과 가치를 추구하고, 추구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우프의 프로그램은 그러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 안에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생각을 배우고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프를 하면 이것을 얻을 수 있어요” 라고 한 문장으로 딱 잘라 말씀드릴 수 없어요. 우프란 무엇이다 라고도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Q. 운영에 있어서 해외 우프와 우프코리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해외에서는 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선 호스트를 모집하는 것에서부터 다르지요. 해외의 경우는 대부분 신청제로 호스트를 두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경우는 심사가 들어갑니다. 가입 심사 말고도 1년 동안의 활동심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우퍼와 호스트의 약속을 두고 있고 또한 호스트 님들이 우프를 보다 잘 이해하고 우퍼와 잘 지낼 수 있도록 오리엔텐이션을 하며 1년에 한 번 모든 호스트님들을 모셔 총회를 합니다. 총회에서는 그해 우퍼에게 가장 좋은 피드백을 받으신 호스트 님들에게 BEST 호스트 상을 수여하기도 하고요. 프로그램 측면에서 보자면 해외와 달리 주말 우프, 그룹 우프 등 특정 기간이나 단체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운 한국인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죠.

    Q.호스트나 우퍼가 될 사람들이 주의해 할 사항이 있을까요?
    호스트가 되고 싶은 분들 중에서 종종 우퍼를 노동력으로만 무임금 노동자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퍼는 절대 노동자가 아니고 일만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중요한 점은 생활 방식과 삶 그리고 생각의 교환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점은 우퍼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프를 하는 시간은 놀러 온 여행이 아닙니다. 일손을 도우며 호스트의 생활 방식을 경험하고 그곳의 문화를 느끼는 것이 우프입니다. 농가에 가서 핸드폰만 보고 있거나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너무 추구한다거나 최선을 다해 일을 돕지 않는 다면 우프를 통해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Q. 우프코리아를 경험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1990년대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가 적었습니다만. 한류 열풍이 불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많이 이슈화되면서 한국 자체를 좋아서 오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이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해외 우퍼들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우프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느 나라의 우프보다 한국에서의 우프 기억이 가장 좋았다고 말을 많이 해줍니다. 자기 나라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가족애, 정을 호스트님들에게서 많이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우퍼들은 본국에 가서도 한국의 호스트를 기억하고 계속 연락을 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호스트님들이 진정한 외교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Q.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우프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정신이 미미합니다. 우프코리아의 미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판단 하시는지요.
    아직까지도 한국인 우퍼 참여율은 전체 참가자의 20% 미만입니다. 사실 우리 나라만의 여가 문화 및 삶에 대한 여유 등 현실적으로 복잡한 사항들로 인해 한국인의 참여율을 높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프가 추구하는 가치가 한국에서도 잘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환경적인 삶에 대한 관심,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이미 젊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식적인 부분들에 대한 변화는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의식에서 행동으로 변화되는 그 순간을 위해 우프코리아는 언제나 같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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